안녕하세요.
며칠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삼겹살 구워 먹으려고 하는데 시간 되면 와서 같이 먹자."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랜만에 엄마가 고기를 구워 먹자고 하셔서 저도 별생각 없이 집에 갔습니다.
엄마는 제가 오기 전에 이미 삼겹살과 반찬을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불판을 올리고 고기를 굽기 시작하셨습니다.
"고기 많이 먹어."
엄마는 고기가 익을 때마다 제 접시에 먼저 올려주셨습니다.
저는 "엄마도 많이 드세요."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나는 먹고 있다." 하시며 또 제 접시에 고기를 올려주셨습니다.
그 모습은 제가 어릴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엄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수술했던 이야기.
임플란트를 했다는 이야기.
병원에 다녀왔다는 이야기.
동네에서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까지.
엄마는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어."
"임플란트도 했어."
"이제 밥도 잘 먹는다."
저도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듣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나는 이걸 이제야 듣고 있는 거지?'
수술을 받을 때도,
병원에 다닐 때도,
임플란트를 할 때도,
엄마는 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신 뒤에야
조용히 지나간 이야기처럼 들려주고 계셨습니다.
아마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들에게 괜한 부담을 주기 싫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엄마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예전보다 주름도 많아졌고,
머리카락도 어느새 많이 희어져 있었습니다.
늘 그대로일 것만 같았던 엄마도, 저와 함께 나이를 먹고 계셨다는 사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도 어느새 48살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저에게만 흐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제가 한 살을 먹는 동안,
엄마도 함께 한 살씩 나이를 먹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로 엄마는 오랫동안 혼자 살아오셨습니다.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시지만,
큰 수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엄마에게 용돈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늘 제 살기도 빠듯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생활비도 있었고,
대출도 있었고,
아이 교육비도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엄마 집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내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엄마를 너무 오래 혼자 두고 살았구나.
엄마는 단 한 번도 서운하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와달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들이 오면 맛있는 고기 한 번 더 먹이고 싶어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부모는 참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자식 걱정은 평생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픔은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이 늘 괜찮은 줄 알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엄마 얼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고기 많이 먹어."
하시며 제 접시에 고기를 올려주시던 모습.
수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하시던 모습.
그리고 조금은 야위어 보이던 얼굴까지.
그제야 저는 엄마의 시간이 제 시간보다 더 빨리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습니다.
조금 늦어질 수도 있고,
조금 더 아끼며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돈처럼 다시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48세가 되고 나니
돈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지만,
시간의 소중함은 더 늦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진짜 효도는
큰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실 때
함께 밥 한 끼 먹고,
이야기 한 번 더 들어드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해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제는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는 아들이 아니라,
제가 먼저 전화하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엄마, 이번 주에 같이 밥 먹을까요?"
그 한마디를 조금 더 자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 오늘을 떠올릴 때,
삼겹살 맛보다
"고기 많이 먹어."
하시며 웃던 엄마의 모습이 더 오래 기억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글을 다 쓰고,
엄마에게 먼저 전화 한 통 드려보려고 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오늘만큼은 부모님께 먼저 안부 전화 한 통 드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해야지 했던 그 전화가, 언젠가는 가장 하고 싶었던 전화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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